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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왜 키보드는 ABC 순서가 아니라 하필 QWERTY일까

키보드 윗줄은 누가 봐도 뒤죽박죽 QWERTY다. 알파벳순이 더 쉬울 텐데도 150년째 표준인 이유는, 타자기 막대 엉킴과 전신 기사들의 요구가 함께 굳어졌고, 한번 모두가 익히자 더 나은 배열도 그것을 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기심

매일 두드리는 키보드의 맨 윗줄을 보자. Q-W-E-R-T-Y. 누가 봐도 뒤죽박죽이다.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놓으면 처음 보는 사람도 글자를 바로 찾을 텐데, 왜 하필 이 엉망인 배열이 150년째 전 세계 표준일까. 더 이상한 건, 컴퓨터에선 자판 배열을 클릭 한 번으로 바꿀 수 있는데도 아무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의 생각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타자기는 너무 빨리 치면 글자 막대가 서로 엉켰는데, 그걸 막으려고 자주 쓰는 글자들을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 타자 속도를 늦췄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속도를 늦췄다는 대목이 좀 이상하다. 도구를 일부러 느리게 만든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그 시절엔 빨리 치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타자 학원도, 열 손가락으로 안 보고 치는 기술도 한참 뒤의 일이었으니, 늦출 대상이 애초에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진실은 이 통념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더 재미있다.

시각화
같은 글자쌍, 두 배열 (배열을 바꿔보세요)
QWERTYUIOPASDFGHJKLZXCVBNM
QWERTY 실제 배열. 자주 함께 쓰이는 T-H, S-T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타자기 시절 글자 막대가 엉키지 않도록 일부러 떼어 놓은 흔적입니다.
모스부호의 헷갈림 (글자를 눌러 소리를 보세요)
Z
S
E
글자를 누르면 모스부호 패턴을 보여줍니다. Z와 S, E가 왜 자판에서 가까이 모였는지 보입니다.

더 효율적이라는 자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36년 드보락이라는 사람이 자주 쓰는 글자를 손가락이 놓이는 가운뎃줄에 모은 배열을 내놓았다. 이론상 더 빨랐다. 그런데도 끝내 퍼지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번 수억 명이 손에 익히고, 학교가 그것을 가르치고, 모든 기계가 그 배열을 달고 나오면, 더 나은 것보다 이미 모두가 아는 것이 이긴다. 갈아타려면 온 세상이 손가락을 다시 길들여야 하는데, 그 비용이 너무 크다. 그래서 더 좋은 길이 있어도 옛 길에 갇힌다. QWERTY는 더 뛰어난 기술이라서가 아니라, 습관과 표준의 관성으로 살아남았다. 타자기는 사라졌는데, 그 시절의 타협만 화석처럼 우리 손끝에 남은 것이다.

위: 같은 글자쌍(T-H, S-T)이 QWERTY와 가상 ABC 배열에서 어떻게 놓이는지 배열을 바꿔 비교하세요. 아래: 글자를 눌러 모스부호 패턴을 보고, Z·S·E가 왜 가까이 모였는지 확인하세요.

본질

QWERTY는 한 천재가 단숨에 설계한 게 아니라, 여러 사정이 쌓이며 굳어진 우연에 가깝다. 두 갈래가 맞물려 있다.

첫째, 활자 엉킴이다. 초기 타자기는 글자 막대들이 둥근 바구니에 빙 둘러 모여 있었다. 가까이 있는 두 막대를 연달아 치면 서로 부딪쳐 엉켰다. 그래서 자주 함께 쓰이는 글자쌍을(영어의 th, st처럼) 바구니 안에서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목적은 타자수를 느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막대가 엉키지 않고 매끄럽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 덜 알려졌지만 더 결정적인 갈래가 있다. 전신 기사들이다. 초기 타자기의 큰 고객은 모스부호를 받아 글자로 옮겨 적던 전신 기사들이었다. 이들은 알파벳순 배열을 오히려 불편해했다. 예를 들어 모스부호에서 Z와 SE는 소리가 거의 똑같이 들려서, 받아치는 사람은 다음 글자가 올 때까지 어느 쪽인지 헷갈렸다. 그래서 S를 Z와 E 가까이에 두면 빠르게 칠 수 있었다. 자판은 이런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며 조금씩 다듬어졌다. 말하자면 자판이 타자수를 만든 게 아니라, 타자수가 자판을 만든 셈이다.

그러니 둘 중 하나만 정답인 게 아니라, 두 사정이 함께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1873년, 총기 회사였던 레밍턴이 이 배열을 단 타자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QWERTY는 세상의 표준이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이 한번 굳으면 좀처럼 안 바뀌는 성질은 키보드만의 일이 아니다. 더 합리적인 대안이 있어도, 먼저 깔린 표준이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우리 둘레에 흔하다. 신호등의 색 순서, 나라마다 다른 콘센트 모양, 자동차가 도로의 어느 쪽으로 달리는가 같은 것들이 모두 그렇다. 한번 모두가 맞춰버린 약속은, 그 자체로 바꾸기 어려운 무게를 갖는다. 그러니 우리가 매일 두드리는 자판은, 150년 전 전신 기사의 손버릇과 타자기 막대의 사정이 지금 내 손끝까지 고스란히 이어진 흔적인 셈이다. QWERTY를 볼 때마다 떠올릴 수 있다. 기술은 늘 가장 좋은 것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굳은 것에 매인다는 사실을.

근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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