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는 성질들의 집합이다
열역학은 늘 어디까지를 볼 것인가부터 시작한다. 눈앞의 통 하나를 정하고 그 안쪽을 계라고 부르며, 바깥은 전부 주위이고 둘을 가르는 선이 경계예요. 먼저 이 경계에서 무엇이 드나드는지 직접 바꿔 보면 된다. 열만 드나들게, 물질까지 드나들게, 아니면 아무것도 못 드나들게 하는 것인데, 경계를 어떻게 긋느냐가 곧 분석의 범위를 정해요. 계를 정하고 나면 그 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말해야 하는데, 상태는 한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압력도 부피도 온도도 함께 있어야 비로소 계의 상태가 정해지니, 상태란 이렇게 성질들이 모인 한 묶음이에요.
통을 하나 골라 그 안을 계로 삼으면, 이제 경계에서 무엇이 오갈 수 있느냐가 계의 종류를 정한다. 버튼을 눌러 보면 닫힌계는 열은 드나들어도 물질은 빠져나가지 못하는데, 뚜껑을 덮고 끓이는 냄비 속 물이 그렇다. 열린계는 물질도 함께 오가서 뚜껑을 연 주전자에서 김이 빠져나가듯 하고, 고립계는 열도 물질도 통과하지 못해 완벽한 보온병을 떠올리면 돼요. 같은 통이라도 경계를 어떻게 약속하느냐에 따라 분석이 완전히 달라지니, 열역학 문제는 늘 경계 긋기부터 시작한다. 실제로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도 밸브가 닫힌 압축 순간엔 물질이 못 드나드는 닫힌계지만, 밸브가 열려 배기가스가 나가고 새 공기가 들어오는 순간엔 열린계로 바뀌어요.
계를 정했으니 이 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말할 차례다. 온도를 끌어올리면 알갱이들이 더 거세게 부딪치고 색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통이 단단해서 부피는 그대로인데도 옆의 압력 막대가 함께 차올라요. 여기서 핵심은 상태를 말하려면 숫자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온도만 말해서는 계가 어떤지 다 알 수 없고 압력도 부피도 같이 있어야 비로소 이 상태가 정해지니, 상태는 여러 성질이 한꺼번에 모인 묶음이에요. 다만 이 성질들을 저마다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일정한 양의 기체라면 압력과 온도처럼 둘만 정해지면 나머지 부피는 이미 따라서 정해진다.
성질들을 한데 모으는 가장 깔끔한 방법은 각 성질을 축으로 삼는 것이다. 가로축을 부피 V, 세로축을 압력 P로 두면 계의 상태는 이 평면 위의 점 하나가 되고, 점을 끌어 옮기면 그 자리가 곧 그 순간의 P와 V를 말해 줘요. 상태 하나에 점 하나인 이 그림이 열역학 내내 쓰는 지도다. 앞으로 나올 등온이나 등압, 단열 같은 말도 결국 이 평면 위에서 점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의 이야기예요. 점이 어디에 있든 그 점은 계가 거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상태만 담기 때문에, 상태 하나를 점 하나로 온전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계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것을 과정이라고 하고, 그림에서 과정은 점이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가는 길이다. 슬라이더를 끌어 진행시키면 점이 상태 1에서 상태 2까지 선을 그리며 이동해요. 시작점과 끝점이 같다고 해서 과정까지 같은 건 아니라, 어떤 길을 지나왔느냐 그 자취 전체가 과정이다. 지금은 길이 하나뿐이지만 같은 두 점을 잇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고,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주고받는 열과 일이 달라진다는 건 곧 만나게 돼요. 두 마을 사이를 오갈 때 직선 거리는 정해져 있어도 산을 넘느냐 돌아가느냐에 따라 드는 힘이 달라지는 것처럼, 시작과 끝이 같아도 어느 길로 가느냐가 주고받는 열과 일을 바꾼다.
그런데 점 하나로 상태를 말하려면 한 가지 약속이 필요하다. 계 전체의 성질이 고르고 더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걸 평형이라고 해요. 한쪽만 갑자기 데워 보면 처음엔 왼쪽은 뜨겁고 오른쪽은 차가워서 온도라는 한 숫자로 계를 말할 수가 없는데, 시간을 흘려보내면 뜨거움이 퍼지며 점점 한 가지 온도로 고르게 가라앉는다. 이렇게 평형에 이르러야 비로소 P나 T 같은 값 하나가 계 전체를 대표하고, 우리가 그린 상태점은 늘 이 평형을 전제로 찍은 점이에요. 그래서 P-V 평면에 매끄러운 곡선으로 그리는 과정은 사실 하나의 이상이고, 변화가 아주 천천히 일어나 계가 매 순간 거의 평형을 유지할 때에만 그 곡선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