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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어장
재료역학

가는 기둥은 부서지기 전에 휜다

임계하중 Pcr = π²EI/(KL)², 세장비 λ = KL/r, 단부 인자 K, 좌굴은 강성·형상의 한계

지금까지는 부재가 응력을 견디다 항복하거나 부서지는 장면을 봤다. 그런데 가늘고 긴 기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너진다. 자 한 자루를 세워 놓고 위에서 누르면, 살짝 누를 때는 곧게 서 있다가 어느 순간 힘이 임계점을 넘으면서 갑자기 옆으로 휘어 버려요. 응력은 아직 항복 근처에도 안 갔는데 말이에요. 이게 좌굴이다. 재료가 약해서가 아니라 곧게 선 상태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무너지는 것이다. 1744년 오일러가 이 임계하중을 정확히 계산했다. Pcr = π²EI(KL)². 놀라운 건 이 식에 재료의 강도가 안 들어간다는 점이에요. 오직 강성 EI 와 길이 L, 그리고 양 끝을 어떻게 잡았는지(K)만으로 정해진다. 왜 긴 사다리, 가는 기둥, 얇은 캔이 갑자기 접히는지, 그 안정의 한계를 본다.

먼저 곧게 선 기둥을 그냥 눌러 본다. P 를 끌면 임계점에 닿기 전까지 기둥은 곧게 선 채로 그저 길이만 아주 조금 줄어든다. 이건 B1 에서 본 축방향 압축이에요. δ = PLAE 만큼 짧아질 뿐 옆으로 휘지는 않는다. 단면의 응력도 σ = PA 로 균일하고 아직 항복 근처에도 못 갔다. 짧고 굵은 기둥이라면 이대로 응력이 항복에 닿을 때까지 곧게 버티다 으스러질 뿐, 좌굴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압축 자체는 좌굴이 아니다. 좌굴은 압축을 받은 곧은 기둥이 어느 하중을 넘는 순간 곧음을 포기하고 옆으로 도망가는 사건이다. 그 문턱이 어디인지가 다음 질문이에요.

이제 하중을 임계값 너머로 밀어 본다. P 를 끌어서 Pcr 를 넘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곧던 기둥이 갑자기 옆으로 활처럼 휜다. 그리고 P 를 조금만 더 올려도 휨 δ 가 빠르게 커져요. 이게 분기다. Pcr 아래에선 곧은 모양이 유일하고 안정한 답이지만, Pcr 을 넘으면 곧은 모양은 불안정해지고 휘어진 모양이 갈림길처럼 새로 나타난다. 왜 하필 갑자기일까. 기둥이 살짝 휘면 하중 P 가 그 휜 거리만큼 굽힘 모멘트를 만들고, 그 모멘트가 기둥을 더 휘게 하고, 더 휘면 모멘트가 다시 더 커진다. 이 되먹임이 재료의 복원력을 이기는 순간이 바로 Pcr 이에요. 응력이 한계에 닿아서가 아니라 모양의 안정성이 무너져서 무너지는 것이다.

그 임계하중이 바로 오일러의 식이다. 핀으로 양 끝을 받친 기둥이면 Pcr = π²EI 다. 여기서 EI 는 굽힘 강성이에요. E 는 재료의 탄성계수, I 는 단면 이차모멘트, B3 에서 본 그 I 다. 기둥이 휨에 얼마나 버티느냐를 EI 가 말해 준다. 그런데 진짜 핵심은 분모에 L² 이 있다는 점이다. L 을 끌어 길이를 두 배로 늘리면 Pcr 이 네 배로 줄어요. 길이가 좌굴 강도를 제곱으로 깎아 먹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단면이라도 긴 기둥은 형편없이 약하다. 또 하나, 이 식에는 항복강도나 극한강도 같은 재료의 세기가 전혀 안 들어간다. 오직 강성과 길이뿐이에요. 좌굴은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강성과 형상의 문제라는 걸 이 식이 못 박아 말해 준다.

그럼 어떤 기둥이 항복으로 죽고 어떤 기둥이 좌굴로 죽을까. 그걸 가르는 한 숫자가 세장비 λ = KLr 다. 여기서 r 은 회전반지름으로, r = √(I/A) 로 단면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퍼져 있는지를 잰다. 임계응력으로 다시 쓰면 σcr = π²Eλ² 가 돼요. λ 를 끌면 그 갈림이 그대로 보인다. λ 가 크면, 즉 길고 가늘면 σcr 이 아주 낮아서 항복에 닿기도 전에 좌굴로 무너진다. 반대로 λ 가 작으면, 즉 짧고 굵으면 σcr 이 항복강도보다 높아서 좌굴 전에 먼저 항복해요. 두 곡선이 만나는 전이 세장비 λ₁ = π√(E/σy) 가 그 경계다. 그래서 설계할 때는 기둥을 보면 세장비부터 따진다. 긴 기둥이냐 짧은 기둥이냐에 따라 지배하는 한계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마지막으로 양 끝을 어떻게 잡느냐가 강도를 크게 바꾼다. 오일러 식의 K 가 그걸 담는다. 단부 조건을 바꿔 가며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해요. 핀-핀이면 K=1 이고 이게 기준이다. 한쪽을 완전히 고정하고 반대쪽을 자유롭게 두면, 그러니까 깃대처럼 세우면 K=2 로 같은 길이라도 Pcr 이 1/4 로 떨어진다. 가장 약한 경우다. 반대로 양 끝을 다 단단히 고정하면 K=0.5 로 Pcr 이 네 배로 뛰고, 고정-핀은 그 중간인 K≈0.7 이에요. K 의 의미는 유효길이다. 실제 길이 L 에 K 를 곱한 KL 이 핀-핀 기둥으로 환산했을 때의 길이이기 때문이다. Pcr = π²EI(KL)² 에서 K 가 제곱으로 들어가니까, 끝을 잘 잡는 것만으로 좌굴 강도가 몇 배씩 달라져요. 그래서 기둥 설계는 단면뿐 아니라 양 끝의 연결을 함께 봐야 한다.

빠른 적용정리하면 좌굴은 응력의 한계가 아니라 안정의 한계다. 가는 기둥은 압축 응력이 항복에 닿기도 전에, 임계하중 Pcr = π²EI(KL)² 에서 곧음을 잃고 갑자기 옆으로 휘어요. 이 식에는 재료의 강도가 없고 강성 EI, 길이 L, 단부 인자 K 만 들어간다. 어떤 한계가 지배하는지는 세장비 λ = KLr 가 정한다. λ 가 크면 좌굴, 작으면 항복이고 경계는 λ₁ = π√(E/σy) 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압축 부재를 보면 응력만 보지 않고 세장비와 단부 조건을 먼저 따져요. 기둥은 짧게, 단면은 멀리 퍼지게(I 크게), 양 끝은 단단히 잡는 게 좌굴을 이기는 길이다. 이걸로 재료역학 15강이 모두 끝났다. 응력과 변형률에서 시작해(A), 축·비틀림·굽힘의 기본 하중을 지나(B), 보의 전단·모멘트·처짐을 거쳐(C), 한 점의 응력 변환과 모어원으로(D), 그리고 마지막 안정의 한계인 좌굴까지(E) 왔다. 힘이 아니라 응력과 강성으로 부재를 보는 눈, 그게 재료역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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