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의 굽힘 진동: 장력이 아니라 강성
줄은 팽팽한 장력이 되돌렸지만, 다이빙대나 책상 모서리에 걸친 자는 장력이 없는데도 끝을 튕기면 되돌아와 떤다. 휘어진 보는 제 굽힘 강성 EI, 곧 재료의 탄성계수 E 와 단면 모양이 정하는 단면 이차 모멘트 I 의 곱으로 스스로 펴지기 때문이다. 보도 모드가 끝없이 많은 연속계이지만, 줄과 달리 모드의 모양이 사인이 아니고 진동수도 기본진동수의 정수배로 늘어서지 않는다. 이 강에서는 무엇이 보의 진동수를 정하는지, 끝을 잡는 방식이 무엇을 바꾸는지, 그 결과가 다이빙대와 날개와 실로폰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차례로 다룬다.
먼저 외팔보의 첫째 모드를 본다. 아래 그림은 왼쪽 벽에 한쪽 끝을 박고 다른 끝은 비워 둔 외팔보가 첫째 모드로 흔들리는 모습이고, 주황 점이 자유단, 흐린 점선이 휘지 않았을 때의 자리다. 이 보에는 줄처럼 양끝에서 당기는 장력이 전혀 없지만, 휘면 바깥쪽 섬유는 늘고 안쪽 섬유는 줄어서 그 변형이 보를 다시 곧게 펴는 굽힘 모멘트를 만든다. 슬라이더는 흔들림의 폭만 바꾸고, 폭을 바꿔도 흔들리는 빠르기는 그대로다. 탄성 범위 안의 작은 진동에서는 되돌리는 힘이 휘어진 양에 비례하므로, 진동수가 진폭과 상관없이 보의 강성과 질량만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책상 모서리에 자를 걸치고 튕기면 같은 진동이 소리로 들리는데, 책상 밖으로 내민 길이를 줄일수록 음이 빠르게 높아진다.
보의 기본진동수는 f₁ ∝ 1L²√(EIρA) 로, 굽힘 강성 EI 가 클수록 높고 단위 길이당 질량 ρA 가 클수록 낮으며 길이 L 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아래 그림의 두 슬라이더는 EI 와 L 을 처음 값의 몇 배로 바꾸고, 오른쪽의 × 숫자는 처음 상태에 견준 진동수의 배수이다. 길이를 오른쪽 끝까지 밀어 1.8 배로 늘리면 진동수가 × 0.31 로 떨어지는데, 같은 비율로 늘린 줄이라면 × 0.56 에 그친다. 반대로 굽힘 강성을 오른쪽 끝인 3 배로 올려도 진동수는 √3 배인 × 1.73 까지만 오르므로, 강성을 키우는 것보다 길이를 줄이는 쪽이 진동수를 훨씬 크게 움직인다. 길이가 두 배가 되면 진동수가 14 로 떨어지는 셈이라, 긴 교량이나 고층 건물, 비행기 날개처럼 긴 구조물일수록 고유진동수가 낮아 바람이나 사람의 걸음 같은 느린 반복 하중과 만나기 쉽다.
높은 모드로 갈수록 보와 줄의 차이가 더 뚜렷해진다. 아래 그림의 버튼으로 외팔보의 모드를 고르면 모양이 줄의 사인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고정된 왼쪽 끝은 기울기까지 0 이라 보가 벽에서 수평으로 뻗어 나오고, 자유단은 언제나 크게 흔들리며, 처음 고른 둘째 모드에서는 마디가 자유단 쪽으로 치우친 한 곳에만 생긴다. 아래 숫자는 세 모드의 진동수 비 f₁ : f₂ : f₃ 로 1 : 6.27 : 17.55 인데, 줄이었다면 1 : 2 : 3 이었을 자리가 정수배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줄의 운동 방정식은 위치로 두 번 미분하지만 보의 방정식은 네 번 미분해서 파장이 짧을수록 진동수가 훨씬 가파르게 커지기 때문이고, 이렇게 정수배를 벗어난 배음을 비조화 배음이라 한다. 두드린 쇠막대가 음높이가 흐릿한 쨍 소리를 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모양을 보기 쉽도록 그림의 세 모드는 같은 빠르기로 흔들리게 했으니 실제 빠르기는 아래 숫자로 읽어야 한다.
같은 보라도 양끝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모드의 모양과 진동수가 통째로 달라진다. 아래 그림의 버튼으로 외팔보, 양끝을 핀으로 받친 단순지지, 아무 데도 붙잡지 않은 자유-자유를 고르면 첫째 모드의 모양이 바뀌고, 아래 숫자인 f₁ 의 계수 (βL)² 는 3.5, 9.9, 22.4 가 된다. 재료와 단면과 길이가 같으면 진동수는 이 계수에 비례하므로, 단순지지는 외팔보보다 약 2.8 배, 자유-자유는 약 6.4 배 높은 음을 낸다. 단순지지 보의 모양은 줄과 같은 사인이지만 진동수 비는 1 : 4 : 9 처럼 n² 에 비례해서, 모양이 같아도 배음의 사다리는 줄과 다르다. 자유-자유 보에서는 양끝과 가운데가 서로 반대로 흔들리고 그 사이 두 곳에 마디가 생기는데, 실로폰 막대를 바로 이 두 마디에서 받치면 받침이 진동을 거의 막지 않는다.
보의 진동은 경계 조건만 바꿔 여러 물건에 그대로 쓰인다. 아래 그림의 버튼으로 세 가지 예를 넘기면 각 경우의 경계 조건과 첫째 모드가 나온다. 다이빙대는 흔히 한쪽을 붙잡은 외팔보로 보며, 끝에서 가장 크게 출렁이므로 선수는 판이 되튀는 박자에 맞춰 그 끝에서 뛰어오른다. 비행기 날개도 동체에 붙은 외팔보처럼 굽힘 진동을 하는데, 속도가 어느 한계를 넘으면 흐르는 공기가 날개의 굽힘과 비틀림에 에너지를 계속 불어넣는 플러터가 생길 수 있어서, 설계에서는 그 속도가 비행 범위보다 충분히 높도록 강성과 질량 배치를 정한다. 실로폰 막대는 자유-자유 보로, 아랫면 가운데를 깎아 둘째 모드를 기본음의 정수배에 맞추는 방식으로 비조화 배음을 다듬는다. 소리굽쇠는 이 막대를 U 자로 구부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높은 모드가 금방 사라져 거의 순수한 기본음만 남고, 그래서 악기를 맞추는 기준음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