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한 유체에서 압력은 방향과 무관하다
잔잔한 물속 한 점을 콕 집어 그 점을 사방에서 누르는 압력을 화살표로 그렸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옆에서도 누르고 있는데, 화살표를 끌어 방향을 돌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쪽으로 돌려도 길이가 똑같아요. 정지한 유체에서는 한 점을 누르는 압력의 크기가 방향과 상관없이 같기 때문이다. 고체라면 미는 방향에 따라 버티는 정도가 다른데 가만히 있는 유체는 그렇지 않고, 이 성질 하나가 유체역학의 출발점이에요. 잠수부의 귀가 사방에서 똑같이 먹먹해지는 것도, 물방울이 동그래지는 것도 다 여기서 나온다.
먼저 한 점에 모인 압력을 느껴 본다. 화살표 하나하나가 그 점을 누르는 압력인데, θ 를 끌면 강조된 방향이 빙 돌면서도 모든 화살표의 길이는 똑같아요. 길이가 곧 압력의 크기인데 방향을 아무리 바꿔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유체는 가만히 있을 때 한쪽으로만 더 세게 밀 수가 없는데, 한 방향이 더 셌다면 그쪽으로 흘러 버렸을 테니까요. 흐르지 않고 멈춰 있다는 건 모든 방향이 정확히 균형을 이뤘다는 뜻이다.
방금 본 균형을 작은 쐐기 하나로 증명해 본다. 유체 속에서 아주 작은 삼각형 조각을 떼어 내면 세 면에 각각 압력이 수직으로 누르는데, 세로면엔 px, 바닥면엔 py, 빗면엔 pn 이에요. θ 를 끌어 쐐기를 기울이면 면의 넓이는 제각각 달라지는데 세 압력은 늘 똑같이 유지된다. 비밀은 힘의 평형인데, 빗면이 받는 힘은 압력 곱하기 넓이이고 그 힘의 가로 성분이 세로면 힘과, 세로 성분이 바닥면 힘과 정확히 맞물려요. 기하가 넓이를 늘리면 각도가 그만큼 깎아 내려서 결국 px = py = pn 이 되는데, 이것이 파스칼 원리의 뿌리다.
그럼 압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면을 수직으로 누르는 힘을 그 면의 넓이로 나눈 것, 곧 p = FA 다. 응력과 똑같은 꼴이지만 유체 압력에는 특별한 점이 둘 있는데, 첫째로 늘 면에 수직으로 누르고 둘째로 늘 미는 쪽이지 당기는 법이 없어요. A 를 끌어 보면 힘 F 는 그대로인데 면이 넓어지면 압력이 낮아져 파랗게, 좁아지면 높아져 빨갛게 변한다. 같은 힘이라도 좁은 면에 몰리면 압력이 치솟는데, 압정 끝이 잘 박히는 것도 넓은 스키가 눈에 안 빠지는 것도 이 나눗셈 덕분이에요.
이제 앞의 것들을 하나로 묶는다. 한 점을 지나는 작은 면을 하나 두고 φ 로 그 면을 돌려 보면, 어느 각도로 돌리든 그 면이 받는 압력 p 는 똑같이 그대로예요. 면의 방향을 바꿔도 읽히는 값이 안 변한다는 건 압력에 방향이 없다는 뜻이라, 힘은 방향을 가진 벡터지만 압력은 방향이 없는 스칼라다. 그래서 압력은 화살표가 아니라 그냥 숫자 하나로 적고, 어느 면에 작용하는지를 정해 줘야 비로소 그 숫자에 넓이를 곱하고 면의 법선 방향을 붙여 힘이 돼요. 압력 자체는 그 점의 한 가지 상태일 뿐이다.
이 한 가지 사실이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풍선을 고르면 안쪽 공기가 껍질의 모든 점을 똑같이 수직으로 밀어내니 풍선이 동그래진다. 잠수정은 깊은 물이 둥근 껍데기 어디든 수직으로 똑같이 눌러서 동그란 단면이 압력에 제일 잘 버텨요. 납작한 상자를 잠가도 마찬가지라, 벽이 평평해도 그 벽의 각 점에서는 압력이 면에 수직으로 작용한다. 모양이 어떻든 유체는 닿는 면마다 수직으로, 같은 점에서는 어느 방향이든 같은 크기로 미는 것인데, 이게 다음 이야기들인 깊이에 따른 압력과 부력으로 이어지는 바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