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은 모양이 아니라 깊이가 정한다
여기 모양이 제각각인 통들이 있어요. 좁고 긴 것, 위가 쫙 벌어진 것, 아래가 불룩한 것. 버튼으로 통을 바꿔 봐도, 물을 같은 높이까지 채우면 바닥의 압력계는 똑같은 값을 가리켜요. 통에 든 물의 양은 분명 다른데 말이죠. 압력을 정하는 건 물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그 지점이 수면에서 얼마나 깊으냐예요. 이걸 정수압 역설이라고 불러요. 이상해 보이지만, 앞 강에서 본 사실, 한 점의 압력은 방향과 무관하다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나와요. 이제 깊이를 끌어내려 보면, 압력이 깊이에 정비례해 자라는 걸 보게 될 거예요.
통 모양을 하나씩 바꿔 보세요. 위가 벌어진 통은 물이 훨씬 많이 들고, 좁은 통은 적게 들죠. 그런데 바닥 압력계는 셋 다 똑같아요. 어떻게 그럴까요. 바닥의 압력은 그 점 바로 위에 얹힌 물기둥만 느끼는 게 아니라, 같은 깊이면 옆에서 눌러 오는 힘까지 사방으로 똑같이 받기 때문이에요. 넓은 통에서 옆으로 퍼진 물의 무게는 기울어진 벽이 대신 받아 줘요. 그래서 바닥에 남는 건 오직 깊이가 정하는 압력뿐이에요. 물의 양도, 통의 폭도 상관없어요.
이번엔 한 점을 잡고 깊이 h 를 끌어내려 보세요. 깊어질수록 압력이 곧게 자라죠. 두 배 깊이 들어가면 압력도 정확히 두 배예요. 구부러지지 않고 일직선으로요. 수면 바로 아래는 거의 0, 내려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차곡차곡 더해져요. 이 곧은 비례 관계가 정수압의 핵심이에요. 표를 외울 필요 없이, 깊이만 알면 압력을 바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왜 하필 깊이에 정비례할까요. 그 점 위에 놓인 물기둥의 무게를 생각해 봐요. 단면적 A, 높이 h 인 물기둥의 부피는 A 곱하기 h, 무게는 밀도 곱하기 중력가속도 곱하기 부피, 즉 ρ g A h 예요. 이 무게가 바닥 넓이 A 를 누르니까, 압력은 무게 나누기 넓이. 그런데 위아래로 A 가 약분돼 사라져요. 남는 건 p = ρ g h. 넓이가 사라졌으니 통이 굵든 가늘든 상관없는 거예요. h 를 끌어 기둥이 자랄 때 무게와 압력이 함께 커지는 걸 보세요.
공식에는 깊이 말고 하나가 더 있어요. 밀도 ρ. 같은 깊이라도 무거운 액체일수록 압력이 더 빨리 자라요. 밀도를 끌어 기름에서 물, 바닷물로 올려 보세요. 압력이 깊이에 따라 오르는 기울기가 가팔라지죠. 그 기울기가 바로 ρ g 예요. 바닷물이 민물보다 살짝 더 누르고, 수은은 같은 깊이에서 물의 13.6 배로 눌러요. 옛날 기압계가 물이 아니라 수은을 쓴 이유가 이거예요. 물이라면 기둥이 10 미터나 필요하지만, 수은은 76 센티면 충분하거든요.
이제 바다로 들어가 봐요. 잠수부가 내려갈수록 깊이 h 가 커지고, 몸이 받는 물의 압력도 ρ g h 로 커져요. 기억하기 좋은 어림은, 물속에서 약 10 미터 내려갈 때마다 압력이 1 기압씩 더해진다는 거예요. 수면에서 이미 공기가 1 기압 누르고 있으니, 10 미터에선 합쳐서 2 기압, 20 미터에선 3 기압이죠. 귀가 먹먹해지는 게 이래서예요. 댐이 바닥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것도, 잠수정이 깊이 한계를 두는 것도 다 이 깊이 압력 때문이에요. h 를 끌어 잠수부를 내려보내며 압력이 어떻게 쌓이는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