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gongsik
내 단어장
원리

왜 젖은 종이는 잘 찢어지는데, 젖은 천은 더 질겨질까

종이와 천은 둘 다 셀룰로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종이는 젖으면 약해지고 천은 젖으면 강해진다. 차이는 재료가 아니라, 강도를 섬유 간 결합에서 얻느냐 섬유의 얽힘에서 얻느냐에 있다.

호기심

물에 젖은 종이는 손가락만 대도 죽죽 찢어진다. 그런데 물에 젖은 면 행주나 청바지는 마른 것보다 오히려 더 질기다. 둘 다 물에 닿았을 뿐인데, 한쪽은 약해지고 한쪽은 강해진다. 게다가 놀랍게도 종이와 면은 둘 다 같은 재료, 셀룰로스로 되어 있다. 같은 재료가 물 앞에서 왜 정반대로 행동할까.

보통의 생각

흔히 종이는 약하고 천은 튼튼하니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답이 아니다. 마른 상태에서는 종이도 꽤 질기다. 신문 한 장도 결을 거스르면 잘 안 찢어진다. 차이는 재료의 강함이 아니라, 그 강함을 어디서 얻느냐에 있다. 종이의 힘과 천의 힘은 출처가 다르다. 그래서 물이라는 같은 손님이 와도, 한쪽에선 기둥을 빼가고 다른 쪽에선 오히려 거든다.

시각화
같은 물, 정반대 결과 (재료를 고르고 물을 부어보세요)
마른 상태100%
마른 종이. 짧은 섬유들이 수소결합으로 단단히 붙어 있어 꽤 질깁니다.
0%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재료를 눌러 구조를 들여다보세요)
흰 점 = 수소결합 (물이 끊는 자리)
종이: 짧은 섬유들이 맞닿은 자리(흰 점)에서 수소결합으로 직접 붙어 있습니다. 힘이 이 결합에 달려 있어, 물이 결합을 끊으면 무너집니다.

그래서 같은 셀룰로스인데도 결과가 갈린다. 종이는 힘을 섬유끼리의 결합에 맡겼기에, 그 결합을 끊는 물이 곧 약점이 된다. 천은 힘을 섬유의 얽힘에 맡겼기에, 물이 결합을 건드려도 끄떡없고 부푼 섬유가 얽힘을 더 조인다. 강함의 출처가 무엇이냐가, 물 앞에서의 운명을 갈랐다.

위: 재료를 고르고 물을 부어 강도 미터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세요. 아래: 재료를 눌러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세요.

본질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나무에서 뽑아낸 짧은 셀룰로스 섬유를 물에 풀어 죽처럼 만든 뒤, 얇게 펴서 말린다. 마르면서 짧은 섬유들이 서로 맞닿은 자리에서 수소결합이라는 화학적 손잡이로 직접 들러붙는다. 종이의 힘은 거의 전부 이 섬유끼리의 결합에서 나온다. 풀로 붙인 종잇조각 더미와 비슷하다. 여기에 물이 들어오면 문제가 생긴다. 물 분자도 똑같은 손잡이를 가지고 있어서, 섬유끼리 잡고 있던 자리를 물이 비집고 들어가 차지한다. 섬유와 섬유 사이의 결합이 풀리고, 짧은 섬유들은 서로를 놓아버린다. 붙여둔 풀이 녹은 셈이라 살짝만 당겨도 찢어진다. 천은 사정이 다르다. 면실은 긴 섬유를 여러 가닥 꼬아서 만들고, 그 실을 다시 가로세로로 짜서 천이 된다. 천의 힘은 섬유끼리의 화학적 결합이 아니라, 길게 꼬이고 촘촘히 짜인 물리적 얽힘에서 나온다. 그래서 물이 수소결합 자리를 건드려도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섬유 하나하나가 물을 머금어 부풀면서 단면이 굵어지고, 이웃한 섬유들을 더 빽빽하게 밀어붙인다. 얽힘이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젖은 면은 마른 면보다 20퍼센트 안팎 더 강해진다.

다시 일상으로

이 차이는 물건을 고를 때 그대로 드러난다. 비를 맞아도 찢어지면 안 되는 지도나 포장지는, 종이에 특별한 약품을 더해 섬유 결합이 물에 풀리지 않게 만든다. 반대로 변기에 버리는 화장지는 일부러 물에 닿으면 결합이 빨리 풀리도록 만들어, 배관을 막지 않고 흩어지게 한다. 행주를 면으로 쓰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빨아 쓰는 동안 늘 젖고 당겨지지만, 젖을수록 질겨지니 쉽게 해지지 않는다.

근거 자료
원리
이 페이지가 도움 됐다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