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냉동고 속 종이는 차갑지 않게 느껴지는가?
같은 -18°C인데 금속은 시리고 종이는 안 차다. 손이 느끼는 차가움은 온도가 아니라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열 전도율)이기 때문이다.
냉동고에서 금속 그릇과 종이 봉투를 동시에 꺼낸다.
금속 그릇에 손이 닿는 순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근데 같이 꺼낸 종이 봉투는 거의 안 차다. 분명 같은 -18°C에 있었는데?
같은 온도라면 차가움도 같아야 하지 않나? 왜 다르게 느껴질까?
보통 답: "종이가 단열재라서 안 차가운 거다" 또는 "금속이 원래 차가운 성질이다". 일부 맞는 답이다. 단,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우리 손이 느끼는 "차가움"은 사실 온도 자체가 아니다.
우리 손이 측정하는 건 온도가 아니라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다.
손은 약 33°C. 냉동고 안 물체는 모두 -18°C. 손이 물체에 닿는 순간 손에서 물체로 열이 흘러간다. 손이 느끼는 "차가움" 강도는 이 흐름의 속도에 비례한다.
흐름 속도를 결정하는 게 열 전도율(thermal conductivity)이다. 구리 401 알루미늄 237 스테인리스 16 유리 1.0 플라스틱 0.2 종이 0.05 공기 0.025 (단위 W/m·K · 위로 갈수록 빠름)
금속 = 자유 전자가 많아서 열을 빠르게 전달. 손에서 금속으로 열이 쏟아지듯 흘러간다. 그래서 손이 강하게 차가워진다.
종이 = 셀룰로오스 + 공기 주머니. 공기는 거의 단열재. 손에서 종이로 열 흐름이 매우 느리다. 그래서 손이 거의 차가워지지 않는다.
같은 -18°C지만 손에서 빠지는 열의 속도가 약 4,700배 차이(237 vs 0.05). 즉 "차갑다" = "열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는 뜻이지, 온도 자체와는 다르다.
아래 그림은 손과 -18°C 물체(금속/유리/플라스틱/종이/얼음)다. 물질을 바꾸면 손에서 물체로 향하는 열 흐름 화살표의 굵기와 속도가 달라지고, 손 색도 변한다. 하단 막대는 다섯 물질의 열 전도율 비교다. 모든 물체가 같은 -18°C인데도 느껴지는 차가움이 다른 이유를 단계별로 따라가 보라.
접촉 냉감 모식도 — 화살표 굵기·속도 = 열 전도율(같은 -18°C, 다른 유출 속도).
[겨울 금속 손잡이 vs 나무 손잡이] 같은 외부 기온인데 금속은 손 시리고 나무는 미지근하다. 금속이 더 차가운 게 아니라 손에서 열을 빨리 가져가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양털 양말 vs 맨발 타일] 타일이 더 차가운 게 아니다. 타일의 열 전도율이 높아서 발에서 열이 빨리 나가는 것. 양털은 공기 주머니로 단열.
[100°C 사우나 공기 vs 100°C 끓는 물] 같은 100°C인데 사우나는 견디고 물에 손 넣으면 즉시 화상. 물은 공기보다 열 전도율 약 25배. 손에 열을 빠르게 전달해서 화상.
[저체온증(hypothermia)] 4°C 공기와 4°C 물. 공기 안에서는 몇 시간 견디지만 물 안에서는 몇 분 만에 위험. 열 전도율이 높을수록 열 손실 속도가 빠르고, 위험도 빨라진다.
[아이스크림 막대기(나무)] 차가운 아이스크림인데 나무 막대기는 그대로 잡을 수 있다. 나무 = 단열재(열 전도율 0.13). 만약 금속 막대기면 손가락이 시려서 못 잡는다.
[스마트폰 알루미늄 케이스] 겨울에 주머니에서 꺼내면 매우 차게 느껴진다. 알루미늄 열 전도율이 높기 때문. 실제 온도는 주머니 안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