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쌍 반발이 분자 모양을 정한다
원자 주위의 전자쌍은 모두 음전하라서 서로 밀어낸다. 그래서 가능한 한 멀리 벌어지려 하고, 그 배치가 곧 분자의 3차원 모양이 된다. 결합에 쓰인 전자쌍뿐 아니라 고립 전자쌍도 자리를 차지하며 밀어낸다. 전자 영역의 개수만 세면 직선형, 평면 삼각형, 사면체형 같은 골격이 정해지고, 고립쌍이 있으면 각이 눌려 굽은형이나 삼각뿔형이 된다. 결합의 극성까지 벡터로 더하면, 분자 전체가 극성인지 무극성인지도 나온다. 밀림이 모양을 정한다.
전자 영역은 서로 반발해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려 한다. 개수가 2개면 정반대로 벌어져 직선형 180° 이고, 3개면 평면 삼각형 120° 이며, 4개면 사면체형 109.5° 가 돼요. 5개는 삼각쌍뿔이고, 6개는 팔면체형이다. 개수를 바꾸면 배치가 어떻게 스스로 정해지는지 드러나요. 멀리 떨어지려는 힘이 골격을 고른다.
결합에 쓰인 전자쌍은 두 원자 사이에 묶여 좁게 있지만, 고립 전자쌍은 한 원자에만 매여 더 넓게 부푼다. 그래서 이웃한 결합쌍을 더 세게 밀어붙여요. 물은 전자 영역이 4개라 이상적으로는 109.5° 여야 하지만, 고립쌍 2개가 밀어 H-O-H 각이 104.5° 로 좁아지고 분자가 굽는다. 고립쌍을 켜고 끄면 각이 줄어드는 것이 그대로 보여요. 부푼 쌍이 각을 누른다.
분자 모양을 말할 때는 전자쌍 배열과 원자 위치를 구분해야 한다. 전자 영역이 4개면 배열은 늘 사면체형이지만, 그중 일부가 고립쌍이면 눈에 보이는 원자만으로 판단한 모양은 달라져요. AX₄ 는 사면체형 그대로이고, 고립쌍 1개인 AX₃E 는 삼각뿔형이며, 고립쌍 2개인 AX₂E₂ 는 굽은형이 된다. 전자 영역 전체와 원자만 보이는 모습을 오가면 차이가 드러나요. 숨은 쌍이 이름을 바꾼다.
전자 영역이 왜 하필 그 배치로 정해질까요. 각 쌍이 서로 밀어내는 반발 에너지의 합이 가장 작은 곳이기 때문이다. 화면의 한 영역을 끌어 최적 위치에서 벗어나게 하면, 이웃과 가까워질수록 반발 에너지의 합이 치솟아요. 손을 놓으면 다시 가장 멀리 벌어진 최소 에너지 배치로 되돌아간다. 그 최소점이 바로 우리가 관찰하는 분자 모양이에요. 가장 낮은 합이 모양이다.
각 결합은 전기음성도 차이 때문에 한쪽으로 전자가 쏠린 작은 쌍극자다. 분자 전체의 극성은 이 결합 쌍극자들을 벡터로 더한 값이에요. 이산화탄소는 두 C=O 쌍극자가 정반대라 서로 상쇄돼 알짜가 0인 무극성이다. 물은 굽어 있어 두 O-H 쌍극자가 상쇄되지 않고 한쪽으로 합쳐져, 알짜 쌍극자가 남아 극성이 돼요. 결합 쌍극자와 알짜 쌍극자를 오가면 방향의 합이 확인된다. 방향의 합이 극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