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 간격이 도체와 반도체를 가른다
원자 하나 안에서 전자는 띄엄띄엄한 에너지 준위에만 앉아요. 그런데 원자 수억 개를 모아 고체를 만들면, 같은 준위들이 서로 밀려나 촘촘한 무리로 퍼져요. 이 무리를 에너지 띠라고 불러요. 전자로 꽉 찬 맨 위 띠를 원자가띠, 그 위의 빈 띠를 전도띠라 하고, 둘 사이의 빈 간격이 바로 띠 간격 Eg예요. 이 하나의 간격이 0인지, 좁은지, 넓은지가 도체와 반도체와 절연체를 가릅니다.
슬라이더로 띠 간격 Eg를 0에서 10 eV까지 키워봐요. 여기서 Eg는 원자가띠 꼭대기와 전도띠 바닥 사이의 에너지 폭이고, 단위는 eV예요. 같은 글자 E를 쓰는 탄성계수나 전기장 E와는 다른 양이라, 언제나 아래 첨자 g를 붙여 구분해요. Eg가 0이면 두 띠가 맞붙어 전자가 자유롭게 흘러 도체가 되고, 1.1 eV쯤이면 규소 같은 반도체, 4 eV보다 넓으면 다이아몬드 같은 절연체가 돼요.
그럼 띠는 어디서 올까요? 원자가 딱 하나면 전자는 뚜렷한 준위 하나에 앉아요. 원자를 N개 가까이 붙이면, 파울리 배타 원리 때문에 같은 준위가 겹칠 수 없어 아주 조금씩 다른 N개의 준위로 갈라져요. 슬라이더로 N을 키우면 이 N개가 점점 촘촘해지다가, 눈으로는 이어진 하나의 띠처럼 뭉쳐 보여요. 이것이 양자의 이산 준위가 고체의 연속 띠로 넘어가는 다리예요.
이제 띠 안을 전자로 채워봐요. 전자는 낮은 에너지부터 차곡차곡 채워지는데, 어떤 에너지에 앉을 자리가 얼마나 많은지는 상태밀도 S(E)가 알려줘요. 여기서 S(E)는 단위 에너지당 상태 수(states/eV)로, 열역학의 엔트로피 S(J/K)와는 전혀 다른 양이에요. 전자가 채운 맨 위 높이를 페르미 준위 EF라 불러요. 온도 T를 올리면 EF 근처 경계가 흐물흐물 번져서, 딱 잘린 계단이 부드러운 문턱으로 바뀌어요.
순수한 반도체(진성)에서는 EF가 간격 한가운데에 놓이고, 전자와 정공이 아주 조금씩 짝지어 생겨요. 여기에 불순물을 살짝 섞는 걸 도핑이라 해요. n형은 전도띠 바로 아래에 여분 전자를 내주는 주개 준위가 생겨 EF가 위로 올라가고 다수 운반자는 전자예요. p형은 원자가띠 바로 위에 전자를 받는 받개 준위가 생겨 EF가 아래로 내려가고 다수 운반자는 정공이에요. 이 EF 이동이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전기전자의 핵심이에요.
마지막으로 온도 T를 올리며 전도도를 재봐요. 금속은 이미 전자가 자유로워서, T가 오르면 격자 진동에 부딪혀 오히려 방해가 커지고 전도도가 1/T처럼 떨어져요. 반면 반도체는 T가 오르면 열에너지가 간격 Eg를 넘겨 전자를 전도띠로 올려주므로 운반자가 exp(-Eg/2kT)처럼 급격히 늘고 전도도가 올라가요. 이 정반대 방향이 간격의 존재를 곧장 드러내요. 아래 곡선은 흐름을 보여주는 규격화된 개형이에요.